다양한 카메라 워크 ’보는 즐거움’
소드타임 시스템 도입 ’하는 즐거움’
액션 어드벤처의 진화, `데빌 메이 크라이 3` vs `천성 소드 오브 데스티니'
16비트 게임기가 롤플레잉 게임의 시대였다면, 지금의 게임기에선 액션 어드벤처가 가장 빛나는 장르다. `귀무자'나 `데빌 메이 크라이' 같이 장르를 대표하는 시리즈가 등장한 것도 지금 게임기의 시대에서다. 하지만 두 장르의 성장에는 차이가 있다. 롤플레잉 게임이 세계관에서 성장 시스템까지 다양한 부품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거대한 공작물이라면, 액션 어드벤처는 한 번에 아름답게 뽑아내어진 주물과 같다. 롤 플레잉 게임에선 그만큼 다양한 부분의 수정과 진화로 게임의 차별화와 성장이 이뤄질 수 있지만, 액션 어드벤처에선 그런 변화의 공간이 부족하다. 액션은 언제나 그것을 만들어내는 `조작 방식'과 그것을 돋보이게 하는 `화려한 효과'로 짜여질 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성장하기엔 쉽지 않다.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가. `데빌 메이 크라이 3'
`데빌 메이 크라이'가 총과 칼, 거기에 덧붙인 `스타일리시 액션'이라는 액션 어드벤처가 요구하는 전형적 구조를 확립하면서, 이것을 넘어선 어떤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2편이 그랬다. 시스템적으로 진화하기 어려운 점을 넘어서기 위해 연출과 효과를 강화했다. 미션의 볼륨과 싸워야 하는 공간을 넓혀 게임이 확장되었다는 느낌을 주는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동시에 시점의 불편함이나 스테이지에 액션이 묻히는 문제가 생겨났다.
3편 역시 연출의 강화가 일차적 목표다. 기본 시스템에서 새로운 것을 제공하기도 어렵고, 자칫하면 기존 사용자에게 불편함만을 안겨줄 뿐이다. 결국 게이머가 새로운 것을 한다고 느끼기 위해선, 그래픽적인 요소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게임의 중심인 액션을 생각해본다면 막연하게 그래픽의 질을 지금까지와 차별화될 정도로 높이는 건 어렵다. 그래서 대두되는 것이 연출이다. 연출은 게임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면서, 지금까지 충분히 발전되지 못했던 영역이다.
게임에선 기존과 같이 컷 신을 사용할 때도, 이야기 전달에 급급하기보다는 영화적 장면을 뽑아내는 데 우선 주의를 기울인다. 그를 위해 다양한 카메라 워크를 사용하고, 장면을 잡는 구도를 바꿔본다. 이런 연출은 컷 신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 게임에선 컷 신과 스테이지의 연결이 꽤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움에 큰 역할을 하는 건 미션이 시작할 때의 디폴트 카메라 시점이다. 이야기와 봐야할 방향이 맞물리면서 위화감을 줄인다.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긴 컷 신에선 어색한 모습이 발견된다. 연출가가 문제가 아니라 배우가 문제다. 이들은 아무 감정 없이 대사를 외워댈 뿐이다. 연출의 기본인 대사와 사건 전개에서 시간 흐름의 완급도 없다. 그저 빠르게 이야기를 전달할 뿐이다.
`데빌 메이 크라이 3'는 물론 좋은 게임이다. 하지만 이 게임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대작 시리즈는 게임의 완성도가 떨어져서 대중의 사랑을 잃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지겨워질 뿐이다.
새로운 시스템을 찾아내기 `천성 소드 오브 데스티니'
대작의 틈을 뚫기 위해선 새로운 것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진화를 위한 여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천성 소드 오브 데스티니'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그래픽의 방향 전환과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이 그 몇 개 중의 하나다.
`데빌 메이 크라이'처럼 액션을 강조하자면 배경은 화려할 지라도,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낮은 폴리곤에 저해상도 텍스쳐를 사용한다. 이렇게 되면 지저분하고 뭉개진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야기에 대한 몰입에는 효과적이다. 그런데 이 게임에선 배경에 고해상도의 텍스쳐를 사용한다. 이것은 사실 위험한 시도다. 게임이 진행되면 될 수록, 특히 액션 어드벤처처럼 쉴 새 없이 빠른 전투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배경은 몰입을 위한 보조적 위치에 만족해야지, 자칫 캐릭터와 헷갈리게 된다.
물론 장점도 있다. 고해상도의 텍스쳐를 사용하는 건 미션에 들어가는 순간, 게임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느껴지느냐를 결정한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이 게임에 특별히 사실적 경험을 필요로 하는 시스템이나 게임성이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시점 조작까지 게이머에게 맡겨 놓은 상황에서 이런 위험한 시도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걸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래픽의 전환의 실패와는 달리 `소드 타임' 시스템의 도입은 매력적이다. 액션 어드벤처가 액션의 화려함과 호쾌함을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면, 순간 정지된 상황에서 적들을 향해 날아다니며 휘두르는 칼질은 게이머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칼의 성장 같은 보조적 시스템도 있지만 역시 액션 자체를 강화시키는 이 시스템이 이 게임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이왕에 액션을 강조한다면, 소드 타임을 게이머 자신의 눈으로도 더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연출과 함께 제공했어야 하지 않을까. 적을 향해 하늘을 솟구치는 호쾌함 뒤에, 뭐가 뭔지 모를 칼질보다는 화려한 동작을 더 자세하게 보고 싶은 것이 게이머의 마음일 터이니 말이다.
대작의 틈새에서 `천성'이 취한 새로운 전략은 실패도 있지만, 살리면 좋을 것도 틀림없이 존재한다. 많은 약점과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런 요소는 게임의 특징이고, 게임의 매력이다. 단점을 넘어서서 게임의 매력을 찾아낼 수 있는 다음 작품으로 이어진다면 그 때 `천성'의 가치는 더 긍정적으로 재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게임평론가